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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없지만 갈망해

싸움_연산과 홍길동_1

이백구십 2022. 9. 7. 18:15

-1-

 

 홍길동이 다시 왔다. 이 얼마나 고대하던 날이었던가? 그렇다. 난 나의 이야기가 홍길동에게 닿기를 몹시도 바랐다. 저잣거리에서 점점 부풀려질 나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찾아오게 만들기 위해 더 애썼던 것도 사실이다. 오만방자한 이 녀석에게 나와의 선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난 그 차이를 증명해 냈다. 내가 유배를 오기 전이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유배를 온 것도 내 업적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오늘 길었던 여정을 완성시킬 완벽한 마침표가 찍혀질 것이다.

 

 이 기쁨을 감출 길이 없어 미소를 띠며 홍길동을 바라 보았다. 홍길동은 처음 본 그 날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있다. 호롱불에 아른거리는 얼굴 위 그림자가 더 많은 표정을 만들었다. 우리의 적막은 어색한 공기를 데웠다. 나에 대해 모두 듣고 왔으면서도 저런 얼굴로 앉아 있는 그를 보며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 빨리 저 놈의 표정이 바뀌는걸 보고 싶다. 무너져 내리는 굴욕인 표정을 보기 위해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던가? 어서 말해라! 어서! 내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고. 인정해라.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어째서 인지 홍길동은 말 없이, 어떤 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 보고 있다. 저 표정은 무엇일까? 평온함일까? 분노일까? 읽을 수가 없다. 무릎을 덮은 손가락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널뛰었다. 왜 가만히 있는 걸까? 찾아 온 것은 본인인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거야? 답답하다. 혹시 내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렇다면 마지막 아량을 베풀어줘야겠다.

 

들었느냐?”

 

 대답해라 홍길동 어서.

그의 입술은 여전히 고요하게 닫혀 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인내하지 못하고 물었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그리 싫으냐? 말해 보거라. 그간 나의 소식을 들었으니 나를 찾아 온 것 아니냐.“

 

 드디어 홍길동의 입이 떨어져 소리를 낸다. 피를 볼 때와 다른 희열을 줄 말을 기대했다.

 

전하는 예나 지금이나 제게 물어야 할걸 묻지 않으시는 군요

 

 놈의 입꼬리에 작게 힘이 들어갔다. 여전히 건방을 떠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입꼬리를 찢고 말을 시키고 싶지만 나는 이 녀석이 당최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네 녀석이 나를 찾아와 놓고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한다니. 홍길동의 말을 더 들어봐야 할 필요가 생겼다. 녀석을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너 까짓 놈에게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하느냐?”

 

전하는 제가 전하를 이 먼 유배지까지 왜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네가 내 이야기를 들었으니 찾아올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느냐? 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말이다.”

 

홍길동이 코로 숨을 뿜으며 웃음을 세어 보냈다.

 

웃어? 네 놈이 나의 이야기를 못들은 게냐? 내가 쳐낸 머리들만 합쳐도 네 놈이 베어낸 머리 보다 갑절은 될 것이다. 네 놈은 벨 생각도 못할 양반들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베어냈다. 내 앞에 서는 모든 이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더구나. 그런데 내가 네 놈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느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좁디 좁은 방안에 홍길동이 참지 못한 웃음 소리로 가득 찼다. 당황스럽다. 무엇이 웃길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것일까? 처음으로 나를 향한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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