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그냥 쓴다,

재능은 없지만 갈망해

싸움_연산과 홍길동_3

이백구십 2022. 9. 7. 18:21

-3-

 

 쾌락만이 남은 즐거운 한 때였다. 원초적 즐거움만을 쫓은 가장 자유로운 때였다. 홍길동을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찾아갔다. 위대한 나 말이다. 사람들을 하나 둘 죽여 갈수록 홍길동의 이름은 내 머리에서 사라지고 쾌락만이 영광으로 남았다. 좀 더 좀 더 큰 쾌락을 원했다. 벌벌 떠는 신하들을 볼 때마다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우월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홍길동도 어디선가 이렇게 벌벌 떨고 있겠지 라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

 

 가끔은 죽여도 죽여도 아무 소식 없는 홍길동 때문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여색을 탐했다. 그러고 나면 나쁜 생각들이 사라지고 멍하니 누워 다시금 채워나갈 힘이 생긴다. 살아있다면 내 이야기를 들었을 테고 그렇다면 언제가 다시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인정할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라 생각했는데 당최 모를 말을 하더니 웃고 있다.

 

내가 고작 물어야 할 것이 네가 내 앞에 왜 나타났냐는 것이냐?”

 

전하는 제가 그 날 왜 스스로 의금부로 갔다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사실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나를 능멸하고 시험하고 있었으니 녀석의 목적은 나다. 그래 그때의 말들을 되새겨 보면 길동은 나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나 어처구니 없는 질문임에는 틀림없다. 왜 이 질문을 하는지 의도를 모르겠다.

 

전하는 제가 전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 전하에게 무릎을 꿇고 전하를 인정하기 위해 왔다 생각하십니까?”

 

아니냐? 그럼 그간 무서워 도망 다니다 내 유배 소식에 겨우 기운이 나서 놀리려 오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홍길동이 처음으로 크게 웃는다. 몹시 어색한 웃음이다. 한번도 웃어 보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한심하구나. 이융!”

 

 홍길동이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 든다. 그의 큰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생각 밖에 일을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당황스러웠고 처음으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길동이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어갔다.

 

 넌 내 흉내쟁이에 불과해

 

뭐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녀석이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아무 이야기나 지껄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더 많이! 그리고 더 높은 지위의 놈들을 죽였다.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했고 이를 통해 나는 내가 홍길동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내가 흉내쟁이에 불과하다니 말도 안 된다. 그럼에도 찜찜한 건 녀석의 분위기다. 처음 의금부에서 그를 보았을 때와 다르게 흥분해 있었다. 무엇일까? 숨어 있는 동안 녀석이 미쳐버린 걸까?

 

 “이융. 네가 사냥을 좋아한다 들었다. 나도 너만큼 나도 사냥을 좋아하지. 사냥은 인간이 경험 할 수 있는 쾌락의 끝 같다. 난 가끔 내가 그것을 위해 태어난 기분이 들어. 오롯이 하나의 생명을 바라보고 쫓아가서 그 헐떡이는 숨을 앗아가는 일은 숭고한 하느님의 역할을 대행 하는 기분이지. 아니 어쩌면 나는 하늘님일지 몰라.”

 

 당최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녀석이 몹시도 신이 나보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당신도 어릴 적에 개미를 죽여 본 일이 있어? 작디 작은 개미들이 군집을 이루기도 하고 하나의 행렬로 길게 늘어서서 죽은 벌레의 몸을 뜯어 나를 때. 그 놈들 길을 손가락으로 막아 보기도 하고, 침을 뱉거나 물을 부어서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게 재미가 없어지면 손가락으로 개미 한 마리를 지긋이 누르는 거야. 처음엔 발버둥을 치지 그러다 이빨로 내 손가락을 물기 시작해. 제 몸집보다 몇 배나 큰걸 들어 나르던 입인데 나는 아무 느낌도 나지가 않아. 정말 우습지 않아? 하하하

 

겨우 개미를 죽인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흉내쟁이라 말하는 것이냐?”

 

 홍길동의 저 이상한 말들을 언제까지 들어줘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건 개미가 아니지 않은가? 정말 내가 아는 홍길동이 맞는지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틀림없이 그가 맞다. 그는 계속해서 엉뚱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개미를 죽여본 적도 없나 보네. 그럼 잠자리는? 잠자리는 있지? 둥 둥 날아다니는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풀잎 위에 앉으면 집게 손 모양을 하고 날개를 한번 더 툭 하고 더 내릴 때까지 기다리다 툭 하고 떨어지면 그 때 날개를 훅 낚아채는 잡는 거 알지? 그리고선 난 잠자리의 그 오묘한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어.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져서 빨리 죽이고 싶어지거든. 그런데 그냥 죽여버리면 재미가 없어. 당신도 알지? 꼬리에 실을 매달아서 내가 준 실 길이만큼 딱 그만큼만 날아 갈수 있게 해서 갖고 노는 거. 내 통제 안에서 놀아나는 잠자리. 흐흐흐 그러다 그것도 지루해 질쯤에는 날개 끝을 잘라도 보고, 날개를 쭉 찢어 몸통을 두 갈래로 찢어 보기도 하고 머리를 떼어내어 내서 떨어진 몸이 날개를 얼마나 파닥거리는지 마주보게 하는 지. 잠자리가 제 몸뚱이를 알아볼까 궁금해 하면서 말야. 크크크

 

 말하는 내내 기분 나쁜 웃음이 섞였다. 그간 자기가 베어버린 양반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겨우 개미와 잠자리를 죽일 일이 무엇이 저리 즐겁다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지금 개미와 잠자리를 죽이던 일이 사람을 죽인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 나를 흉내쟁이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려고 한다면 정말 실망이다. 제발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홍길동. 그렇다면 지난 나의 시간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넌 내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잘 생각해봐. 이 모든 게 쾌락의 시작이야. 사람들은 아주 웃겨. 작은 곤충에게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 대상을 개구리로, 제비로, 강아지로 그리고 사람으로 바꿔서 한다고 하면 반응이 점점 달라져. 다리를 찢거나 그것에 불을 붙인다 하면 사람들은 나를 제재하고 손가락질을 하지. 웃기 않아? 무엇이 다르다고. 그 조그만걸 죽일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말이야. 난 그 쾌락을 잊고 사는 놈들한테 칼을 쥐어주고 뛰는 가슴에 칼을 찔러 넣을 때 느껴지는 심판자의 기분을 알게 해주고 싶어. ! 정말 나는 하늘님이 아닐까? 하하하 사람들을 깨닫게 하려고 이 땅에 온 하늘님말야.”

 

홍길동이 점점 더 괴변을 늘어 놓는다. 실망이다. 그때의 나를 압도하던 홍길동은 어디 있는 것인가? 

 

  나는 하늘님이다. 네 생명은 내게 달렸다. 하하하

 

더 이상 봐 줄 수도 들어 줄 수도 없다. 아무래도 소식이 없는 사이 이 녀석은 미쳐버린 것 같다.더 이상 이 놈을 상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이 놈을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홍길동! 그만하고 여기서 썩 물러나거라. 내가 너를 크게 잘못 생각 하였구나.”

 

홍길동의 얼굴에 표정이 금새 사라지더니 크게 열린 동공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했다.

 

난 사냥을 할 때 사냥감을 내가 원하는 길목으로 몰아. 그리고 그 길목 즈음에서 내가 놓친 척을 하지. 그럼 사냥감은 살았다 안도해. 난 그 때 녀석을 죽여.”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홍길동이 순식간에 내 목을 쥐고 벽으로 밀어 붙였다. ! 하고 숨이 막혔지만 그보다 목젖이 눌리는 고통이 더 컸다.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보려 하기도 전에 왼쪽 옆구리에 날카롭게 들어오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홍길동이 얼굴을 들이대며 눈을 마주쳤다. 녀석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흥분도, 즐거움도, 분노도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어둠만 가득한 눈이었다.

 

어릴 때 말이야. 내가 사냥을 아주 잘했어. 토끼 한 마리 잡지 못하던 멍청한 형들은 겨우 덫을 놓고 몇 날 몇 일을 기다렸는데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어. 난 본능적으로 알았지.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는지. 게다가 난 글 재주도 형들 보다 좋았어. 사서를 형들보다 먼저 읽고 맹자가 말하는 군주에 대해 아버지와 토론을 벌 일 정도였는데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를 인정하지 않으셨어. 난 궁금했어. 왜 그럴까? 내가 저 멍청한 형들보다 부족한 게 뭘까? 사람들은 내가 서자로 태어나 열심히 해봐야 소용이 없을 거라는데 정말 내가 서자라서 아버지는 나를 무시한 걸까? 내 머리의 미천한 피를 받아서? 어떻게 하면 나를 인정할까? 그래 저 있으나 마나 한 멍청한 형들이 없으면 나를 인정하지 않을까 싶었지.”

 

정신이 점점 몽롱해지는 것이 조이는 목 때문인지 점점 들어오는 칼날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홍길동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형들을 곳간에 가두고 불을 질렀어. 물고기가 파닥대는 거 같이 문을 열라고 아우성치는 형들이 얼마나 우습던지. 그렇게 가만히 불을 보며 웃고 있는데 어머니가 다른 노비들을 데리고 나타났어. 나를 밀쳐내고 곳간 문을 열어서 형들을 꺼내더군. 젠장. 어머니가 처음으로 미웠어. 어머니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그런데 더 어이없던 건 이 일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 난 죽은 목숨이라면서 날더러 도망치라는 거야. 내가 왜? 없어도 되는 무능한 형들이 죽어 없어지고 능력 있는 아들만 남으면 좋은 거 아냐? 손도 안대고 코를 푼 게 아니냐고?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집을 나오게 됐어. 그런데 내가 왜 나와야 했을까? 왜 그 행동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죽이려 한다는 걸까?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질문만 생각이 났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이제는 내가 왜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는지 모르게 됐어. 인정 받으려는 내 행동들이 부질없어 보이는 거야. 그리고 그 생각이 들고 나니까 약간의 해방감이 느껴졌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졌어. 더 큰 해방감. 그래. 내가 그토록 인정 받고 싶어했고,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들자. 당신이 인정하지 않던 아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 사람인지를 말이야. 이제 조금 이해가 가느냐? 이융.”

 

홍길동이 조른 목을 풀고 칼을 빼내며 물러나 섰다. 숨이 길게 내쉬어 졌다. 옆구리가 아프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손으로 옆구리를 잡고 숨을 골랐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홍길동이 바라보고 있는데 저 표정이 잠자리의 눈을 볼 때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빨리 죽이고 싶지만, 실에 묶어 조금 더 가지고 놀다 죽이자 라는 얼굴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내가 처음으로 그의 표정을 읽고 있다는 것을.

 

네 아비를 두렵게 만드는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더냐? 쿨럭. 네 놈이 내가 한 일들을 듣고 사람들이 나를 더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견디지 못해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냐? 네 놈은 지금 질투를 하는 것이다. 쿨럭 쿨럭.”

 

전하. 잘 들으십시오. 제 목적은 처음부터 전하의 목이였다는 말입니다. 전하의 목을 거두어 내 아버지께 드리고 알려 드리려 합니다. 아버지가 무시한 이 홍길동이 어떤 사람인지. 마음을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 처음부터 내 목이 목적이었다는 말은 이 모든 것이 네 놈의 쿨럭. 계획이었다는 말이냐? 그것이 지금 말이 되느냐? 그냥 네 목을 가져가거라.”

 

되지도 않는 말을 하는 홍길동을 비웃어 주었다. 어찌 이것이 모두 계획이라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의지로 살아왔는데 말이다. 홍길동이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이융. 네 어미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오사화를 보며 어떻게 너를 구슬려야 할지 알았지. 내가 의금부로 자수하건 네 어미 윤씨의 이름을 들먹여 네 머리 속에 어머니를 심어두고 나를 흉내 내어 그 복수를 하게 만들고자 함이었다. 그렇게 네 놈을 내 손바닥에 두기 위해 양반 놈들을 죽이고, 임사홍을 비롯한 네 놈 주변의 대신들을 하나! ! 포섭하여 이 나라의 왕이! 어머니의 복수로 조정을 피로 물들이고, 여색에 미쳐 가장 문란 왕이 되도록! 내가 다 계획한 것이다. 왜냐구? 네 놈을 사냥하기 위해서. 이렇게 내가 다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느냐?”

 

홍길동이 짜증을 내며 말한 진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네 사냥감이라는 것이냐? 그렇다면 왜 처음 만났을 때 죽이지 않았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냥을 할 때는 그냥 죽이는 게 아닙니다. 전하. 몰이를 해야지요. 그리고 사냥감이 가장 안도할 때 죽이는 겁니다.‘살았다. 내가 이겼다.’ 생각할 때.”

 

이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정말 사실일까? 내가 저 녀석의 계획대로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말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사건들이 제자리를 찾아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녀석이 의금부에 앉아 나를 보던 표정과 대화도, 외할머니를 통해 피 묻은 적삼을 보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임사홍이 다가와 듣기 좋은 말을 해 댔을 때도.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며 홍길동의 말의 신빙성을 더한다.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저 놈은 무엇인가? 내가 쫓아 밟아 뭉개고자 한 저 사람은. 무섭다. 지금 이 순간 내 목숨을 빼앗길 것 보다 내 앞에 저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전하. 전하의 목을 제 아버지께 좀 가져가겠습니다.”

 

목이 베어졌다. 그리고 길동을 머리를 들어 머리가 잘려나가 피가 솟구치는 몸으로 돌려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기웃 숙여 눈을 확인했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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