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그냥 쓴다,

재능은 없지만 갈망해

싸움_연산과 홍길동_2

이백구십 2022. 9. 7. 18:18

-2-

 

 연산군 6 10 22일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아뢰기를 ,”듣건데,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 

-조선왕조실록-

 

 홍길동은 처음 본 그날은 대신들과 지루한 경연이 계속 되고 있던 날이었다. 수염에 침이 맺히도록 열을 올리며 아니 되옵니다.’, ‘아니 옵니다.’만 반복하는 그들의 입에 칼을 집어 넣고 말을 시키는 상상을 했다. 다들 자기들이 가장 잘났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선왕께서는.. 선왕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아직도 김일손의 일가가 왜 죽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인간의 가벼운 기억력 탓에 너무 쉽게 잊은 것이다. 이런 멍청한 인간들에게는 매번 기억을 다시 상기 시켜줄 필요가 있다. 내가 누구이고 그들이 왜 죽었는지. 내 앞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런 저들을 보고 있자니 이가 더 아팠다. 이런 날엔 사냥이 간절해졌다. 말을 타고 숲에 나가 사슴 한 마리를 몰아간다. 죽지 않으려 끝까지 사력을 다해 뛰어가는 사슴을 쫓다 보면 모든 감각들이 사라지며 희열이 그 자리를 채운다. 숲의 나무들이 아득히 사라져가며 사슴을 제외한 주변 세상이 검게 물들어 버리면 들리는 건 도망가는 사슴의 다급한 발소리이고 맡아지는 건 쾌쾌한 털 냄새다. 그때는 오로지 녀석의 피를 보기 위해 쫓기 시작한다. 나의 신분이고 체면이고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옷들이 벗겨지는 그 순간의 기분은 무엇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절정은 마지막 순간에 쓰러져 사라지는 사슴의 눈빛이다. 어떤 그림보다 어떤 절경보다 아름답다.

 

 “전하, 의금부에 도적 홍길동이 잡혔다 하옵니다.”

 

 즐거운 되새김을 도총관이 깨버렸다. 하지만, 홍길동이라는 소리에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홍길동은 상소문 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다. 홍상직의 서자인데 현감, 현령, 군수 할 것 없이 지방관이나 관찰사들의 제물을 탈취하고 머리를 베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그가 마치 세상 모든 양반들의 머리가 이렇게 될 것이라 경고하듯 죽은 이의 머리에 관모를 씌워 걸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양반이 아닌 자의 목숨은 거두지 않아 백성들은 그를 의적이라 부르며 따르고 돕고 숨겨주기 까지 한다 했다. 그러고 보면 상소에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를 향한 소문은 점점 커져 갔다. 작년에는 함경도 감영을 탈취하여 감사가 그를 쫓았는데 되래 그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홍길동이 감영의 목을 베고 축지법을 써서 도망을 쳤다 소문이 퍼졌고, 공주의 감사가 죽었을 때는 그가 분신술을 써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대한 소문은 지리산에서 나무꾼들을 잡아 먹던 새우니를 바람술법으로 잡고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것이라 선포했다고 한다.

 

 서자 놈 주제에 왕을 꿈꾼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궁금했다. 그가 진짜 왕이 되고 싶을까? 나를 죽이고 내 자리에 앉고 싶은 걸까? 그리고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사람을 죽이고도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양반만을 죽일 생각. 정말 영특하지 않은가? 양반만을 죽여서 자신을 향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지지를 한꺼번에 얻어낸다니 말이다. 도대체 홍길동이란 놈이 어떤 놈일지 궁금했다.

 

 급히 경연을 끝내고 의금부로 향했다. 의금부로 가는 내내 판사는 홍길동의 악행이 잔인하고 백성을 불안에 떨게 하며 역모를 계획하였으니 참형에 처하는 것이 옳다며 떠들어 댔다. 지사들은 홍길동이 제 발로 붙잡혀와 주다니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 말하기도 하고, 손을 쓰지 않고 잡게 된 것은 전하의 덕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라며 아부를 하였다. 그들이 어찌 말하건 그들은 마음은 하나로 모아졌다. 자기들의 목도 언젠가 홍길동에게 베일 수 있겠다 생각하였으므로 내게 참형을 내리시라며 짖었다. 그 순간에도 감히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저 입들을 꾀며 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홍길동을 향한 호기심으로 그들이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금부까지 가는 길이 그날 따라 더 길게 느껴졌다.

 

 의금부에 들어서자 멀리 포박되어 앉아 있는 홍길동이 보였다. 여러 감사와 양반의 목숨을 가져간 도적이라 생각하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몸집이라 놀랐다. 저 체구로 어떻게 감영들의 목을 베고 그리 쉽게 도망을 다녔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정말 술법을 쓰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의금부에 잡혀오면 하나 같이 어미와 떨어진 짐승 새끼 마냥 몸을 벌벌 떨며 목숨을 구걸하거나, 떨어 대는 몸과 달리 호기롭게 입만 살아 큰소리를 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홍길동은 죽은 듯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마치 내가 그에게 끌려 가는 기분이 들었고, 자칫 그의 기에 눌릴 뻔하여 의식적으로 그의 눈을 더 노려 보며 앉았다.

 

 의금부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숨을 죽여 홍길동에게 집중했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모양새가 홍길동의 얼굴을 한 번 보고자 애써 그 자리에 서있는 병사도 있어 보였다. 대신들은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려가며 그의 태도를 관찰하기도 하고 혹 술법을 써 목을 벨까 두려운 것인지 오금을 덜덜 떨고 있는 대신도 있었다.

언제나 그랬든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을 때 내 권위와 위엄에 느껴지도록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폈다. 그리고 홍길동에게 물었다.

 

네 죄를 아느냐?”

 

 젠장. 약간 삐끗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들키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동안 홍길동이 말했다.

 

비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전하.”

 

 알아챘다. 그가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첫 기 싸움에 졌다는 생각에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네 목을 치기 좋은 날이구나. 네가 왜 이곳에 온지 아느냐?”

 

전하. 저 한강에서 물고기를 낚는 어부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왜 잡힌 지 아는지요

 

네 이 놈! 무엄하다! 네 놈이 전하 앞에서 말 장난을 하는 것이냐

 

 지사가 목청을 높여 호통을 쳤다. 지사가 녀석의 수에 말려 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도발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그의 죄보다 두려움을 드러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 윽박지르며 말했다.

 

네 놈은 함경도 감사 임지택, 전주감사 이성임, 동래감사 한영희, 평택 윤항섭을 포함하여 총 서른이 넘는 사람을 죽인 죄, 또한 백성을 현혹하여 반역을 일으키려 한 죄..”

 

되었다. 그만하라.”

 

의미 없이 망자의 이름을 나열하는 지사의 말을 끊었다.

 

이미 네가 한 일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였다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부인 하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제가 한 일들은 인정하오나 그 것이 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웃음이 나왔다. 감출 수 없는 웃음을 머금고 어이없는 그의 대답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전하는 저잣거리에 굶주려 구걸하는 백성에 대해 듣지 못하셨습니까? 농사를 지어도 세금을 내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고 다니는 백성 말입니다. 저는 부패하여 백성을 돌보지 않고 부정을 저지르는 탐관 오리들을 벌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착취한 것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어 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워준 것이 다입니다. 이것이 죄란 말입니까?”

 

대체 네 놈이 무슨 권한으로 그들을 벌 한단 말이냐? 누가 네게 그 권한을 주었느냐?”

 

 건방진 녀석. 홍길동의 생각은 훌륭하나 감히 제까짓 게 무엇이기에 양반을 벌한단 말인가? 이 나라의 왕인 내가 감찰을 임명하고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정말 나를 끌어 내리고 왕이 되고 싶어 하는 그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 좋게 양반만 골라 죽인 살인귀일까 했는데 재미가 없어졌다. 녀석이 어떤 대답을 하든 이 조선을 부정하고 나를 부정하는 역적 행위다. 그 건방진 표정에 두려움을 심어주마.

 

백성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전하. 만약 조선에 백성이 없다면 조선이 나라입니까? 양반들과 왕만 있는 세상이 나라입니까? 그것은 광대 놀이 아니겠습니까?”

 

홍길동이 약간의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조선의 주인인 백성 중에 부패한 양반을 죽인 제가 죄인이라 말할 이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굶주리고 분노한 백성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그들을 벌하였습니다. 전하는 누구로부터 권한을 받아 그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놈이 나를 도발했다. 감히 내게 도전하는 것인가? 길동을 노려 보았다. 하지만 길동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이어갔다. 전혀 흔들림 없이 흥분하지 않았다. 요동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놈이 지금 나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냐?”

 

전하나 저나 다 여인의 몸에서 나온 사람이 아닙니까? 다른 것이 있다면 제 아비는 홍상직이고, 전하의 아비는 선왕이신 성종이시며, 저는 첩의 소생이고, 전하는 성종의 둘째 부인 폐비 윤씨의 아들일 뿐 아닙니까?”

 

 대신들도 흔들렸다. 그리고 나의 눈치를 보며 왕을 능멸하고 있으니 당장 목을 베어야 한다 소리쳤다. 대신들이 모습을 보아 하니 분명 선왕을 욕보이거나 나를 능멸해서가 아니라 저 놈이 내 어미 폐비 윤씨를 입에 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잊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갔다. 어머니는 나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했다. 나를 돌보기 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고 질투하다 아버지의 분노와 대신들의 등쌀에 돌아가셨다. 불쌍한 여인 같으니. 이후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일을 아무도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나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가 지독하게 미웠었다.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모르는 척 살아서였을까? 사람들은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했고 정현왕후를 친 어머니라 생각한다 믿었다. 다들 어린이의 기억력을 너무 무시했다. 자신들에게 어린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어머니를 홍길동이 입에 올린 것에 대신들이 당황하여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선명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홍길동의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나의 권위를 끌어 내려 동등한 위치에 놓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나를 끌어 내리고 이 나라의 왕이 되고 싶다면 왜 자수를 하였단 말인가? 잡혀 올 것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켜 나를 끌어 내리고 왕이 되면 될 것을. 그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네 놈이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냐?”

 

이 나라의 왕은 제 앞에 있는 전하입니다. 저는 그저 백성의 소리를 듣는 또 하나의 백성일뿐입니다.”

 

네 놈이 날 놀리는구나.”

 

제가 전하를 놀려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조선의 왕인 내 앞에서 조선 왕조를 부정하고 나의 권위마저 부정하고 능멸하다니 참으로 당돌하구나. 허나 내 넓은 아량으로 네 놈에게 기회를 주마. 소문에 네 놈이 도술을 부려 도망을 다니고, 악귀를 잡아 백성을 도왔다 들었다. 어디 내 앞에서도 도술을 부려 지금 저 처마 위로 올라 보거라. 그럼 네 죄를 용서 하겠다.”

 

제겐 죄가 없습니다.”

 

유혹이 약했을까? 네 놈이 원하는걸 걸어도 넘어 오지 않을까?

 

왜 너무 꽁꽁 묶여 도술을 부리지 못하겠느냐? 그럼 네 놈을 위해 더 쉬운 방법을 알려 주마. 네 놈이 내게 절만 하면 널 용서하고 이 조선을 너에게 주마. 네가 왕이 되어 스스로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네가 말하는 그 백성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신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커졌다. 무언가 내게 말을 하고 싶은 듯 했으나 아무도 이분위기를 깨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혹시나 좀 똑똑하다 싶은 것들은 내 의도를 알아 챘을 수도 있으리라. 홍길동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제겐 죄가 없습니다. 왕의 권한을 받은 자가 부패하였고 이를 밝혀 벌해야 하는 자들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사리 사욕을 채웠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며 온 나라에 양반들을 향한 원망과 성토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의 이름으로 부패한 자를 벌한 것뿐입니다. 전하라면 그 목소리를 듣고도 묵인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장 그들의 목을 베라 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한 일이 전하가 하셔야 하는 일과 무엇이 다릅니까? 백성의 목소리만을 듣고 그들의 위해 부패한 자의 목을 똑같이 베는데 말입니다. 만약 제 목을 베시려거든 대신들의 소리를 듣고 전하의 어머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린 선왕의 머리도 베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대신들은 곧장 선왕을 모욕하고 있다며 소리를 질렀다. 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앞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목을 비틀어 숨소리도 세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홍길동은 내 감정은 안중에 없는 것인지 아예 모르는 것인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도 없다 하는데 전하는 폐비 윤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도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것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을 위해 자신까지 희생하시려는 성군의 모습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목을 베시려는 것을 보니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 이놈!”

 

 그렇다 사실 놈의 말이 모두 옳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고 태어나 보니 장자로 선택을 받아 왕이 되었다. 지겹도록 왕의 자질, 성품, 덕목에 대해 교육 받았다. 그러니 백성을 위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옳다. 또한 아무도 벌하지 못하는 죄지은 사람을 벌하는 일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하지만 화가 났다. 어쩌면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보란 듯이 내 머리 위에서 나를 비웃는듯했다. 왕의 자리에 않았으나 나보다 나은 것이 없다며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보였다. 분명 홍길동이 묶여 묶여있고 내가 그를 추궁하고 있지만 그의 의지대로 쉽게 양반의 목을 베어내듯 더 자유로워 보이는 건 나보다 그였다. ‘당장 목을 베라라고 소리 치고 싶었다. 하지만 냉정을 되찾기 위해 숨을 크게 내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녀석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힘의 차이를 보여 줄 수 있을까? 내가 왕의 자리에 있고 그가 저 아래 묶여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하면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저 잘난 표정을 뭉개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녀석의 목숨을 살려둬야겠다. 대신들은 당장 목을 치기를 원했다. 모자란 것들. 당장 목을 치면 녀석을 인정하고 화가 나서 감정적 대응을 한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난 녀석의 절을 받아야겠다. 자신이 누구 앞에서 잘난 채를 한 것인지 뻐져리게 느끼게 해줘야 했다. 때문에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목을 베기까지 조금의 시간을 두어 생각할 시간을 벌기로 했다.

 

내일 저 놈의 목을 베어라

 

 하루의 시간을 벌었다. 급히 대전에 들어와 어떻게 하면 분이 풀릴지 생각을 했다. 몸을 갈갈이 찢어서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줄까? 그의 가족들과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을 눈 앞에서 다 죽여줄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울까? 무엇이 그 놈에게 내 힘을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 놈이 내 앞에서 잘난 채를 하며 모욕한 일을 후회하고 내가 놈과 무엇이 다른지 왜 왕인지 인정하게 될까? 식사를 거르고 밤이 깊어지도록 생각을 거듭하던 와중에 김처선이 들어와 일렀다.

 

전하 홍길동이 의금부에서 사라졌다 하옵니다.”

 

뭣이라?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옥이 부서지지도 않고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홍길동만 사라졌다 하옵니다.”

 

그럼 뭐 진짜 도술이라도 부렸다는 게냐? 도대체 그곳을 지키는 자들은 무엇을 하였단 말이냐! 당장 그놈들을 추포하고 추궁하도록 하라

 

 도망을 가다니 홍길동도 어쩔 수 없이 죽음 앞에서 두려움이 앞섰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을 평생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괴롭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그 놈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왕인지.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홍길동 네 놈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말이다.

 

 이 생각이 들고 나니 분노가 가라앉고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사냥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홍길동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나도 저 대신 놈들이 얼마나 꼴이 보기 싫었는가? 허구한 날 반대만 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놈들을 처리하고 홍길동까지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폐비윤씨.

 

내 어미 폐비 윤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놈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백성들은 어미에 대한 깊은 효심에 의한 숙청이라 생각지 않겠는가? 어머니는 복도 많다. 생전 아버지 말고 자신의 자식조차 관심이 없던 사람인데 그 아들이 어미의 이름으로 복수를 하겠다니 얼마나 고마울까? 또 한번 웃음이 나왔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좋을 지 고민했다. 너무나 뜬금없고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길 바랐다.

 

죽지 마라. 잡히지 마라.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줄게.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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